[책마을] "시인은 장난꾸러기면 안되나요"

입력 2023-07-21 18:38   수정 2023-07-22 01:03

‘서점’이라고 적힌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내 간판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책은커녕 천장의 나무판자 사이로 모래가 쏟아지고, 바닥에는 모래가 산처럼 쌓여 있다. 도무지 현실 같아 보이지 않는 이 광경은 문보영 시인(31·사진)의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속 한 장면이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 ‘역자 후기’를 펼쳐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문 시인의 시를 풀이한 ‘문보영 번역가’는 “편집하는 중에 푸른 눈의 당나귀를 마주쳤다” 등 내용과 상관없는 얘기만 늘어놓는다. 이쯤 되면 독자는 슬슬 눈치챈다. 제목에 속았다는 사실을.

“시를 쓰면서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장난기예요. 장난꾸러기 시인 한 명쯤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웃음)

최근 세 번째 시집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을 출간한 문 시인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번 시집은 초현실적 배경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 46편을 묶었다.

문 시인은 “현실을 다루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현실과 멀어진 세상으로 가게 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현실을 다루지만 역설적으로 현실에서 벗어난 시. 그게 문 시인의 장르다. 2016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문 시인은 김수영문학상을 안겨준 <책기둥>(2017)에선 환상 속 도서관에서 문학도들이 나누는 대담을, 두 번째 시집 <배틀그라운드>(2019)에선 최후의 1인만이 살아남는 온라인 게임 세상을 그려냈다.

이번 시집에서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했다. “지난 3년 동안 친구, 독자들과 낙서를 교환했어요. 제가 만든 세상을 소개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풀어냈죠. 장난기 가득한 낙서들이 일종의 사고실험이 됐어요.”

그는 시에서 알맹이와 껍데기가 겉도는 모습을 즐겨 표현한다. 수록작 ‘거주자’에 등장하는 시인은 제목과 본문이 일치하지 않는 시를 써낸다. “제목으로 시의 내용을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의 내용을 틀에 고정하기보다는 딴소리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를 독자들께 들려드리는 게 더 재밌으니까요.”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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